언제나 먹는 제육볶음을 만들어 보았다.
항상 같이 음식을 먹는 옆지기를 위해 음식을 만들기 전, 먹고 싶은 형태를 묻는다. 오늘의 주문은 물기가 어느 정도 남아 있는 국물 제육볶음. 개인적으로 나는 국물이 많은 제육볶음을 좋아하진 않는다. 국물 없이 빠르게 볶아내어 기름기가 도는 제육볶음을 더 좋아한다. 하지만 오늘은 국물 제육볶음으로.
필요 재료는
파 1줄
마늘 5쪽
애호박 1/2개
양배추 1/10개
앞다리살 1근(600g)
양념에 들어가는 것은
고추장
간장
후추
굴소스
기타 필요한 것은
설탕
소금
된장
참깨
고춧가루(굵은 것)
조리의 시작은 항상 채소를 다듬는 것으로 시작.
대파 한 줄을 꺼내 시든 부분을 다듬고, 큼지막하게 썰어낸다. 파란 부분이 적어도 좋다. 흰 부분이 핵심이니.
냉장고에 쓰다 남은 애호박이 보인다. 이것도 넣어주자. 마찬가지로 냉장고에서 시들어가는 양배추가 보이니 이것도 오늘 처리해 보자. 볶음요리의 아주 큰 장점이다. 냉장고 정리가 가능하다는 것.
물론 애호박은 특유의 단맛과 감칠맛 때문에 제육볶음에 넣으면 아주 어울린다. 양배추 역시 단맛을 더 가미해 준다.
둘 다 섬유질이 많아 포만감을 늘려주기 때문에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는 자기 최면에도 큰 도움이 된다. 햄버거 세트 시키면서 콜라는 꼭 다이어트 콜라로 주문하는 심경과 같다.
야채를 다듬으면 양념장을 준비한다. 상기한 재료들을 모두 넣어 쉐킷 쉐킷.
나와 옆지기는 마늘을 아주 좋아한다. 특히 익힌 마늘의 식감을 좋아한다. 그래서 다진 마늘을 쓰기보다 거칠게 으깬 마늘을 더 좋아한다. 생마늘을 꺼내 짓이긴 후 칼로 썰어 넣는다. 이러면 향도 괜찮고 식감도 좋다.
개인적으론 양념장 스타일 제육볶음을 좋아하진 않지만, 국물 제육볶음이기에 양념장으로 만든다.
양념장을 만드는 사이에 팬을 미리 불에 올려놓고, 팬에 열이 충분히 오르면 고기를 넣는다. 팬을 미리 달궈두는 이유는 2가지.
첫 번 째는 우리 집은 인덕션을 쓰기 때문이다. 달궈지는 속도도 느린 데다 화력이 낮아 팬이 달궈져도 온도가 높지 않다.
두 번 째는 국물 제육볶음을 할 거라 고기의 겉만 미리 익힌 후, 야채와 익는 속도를 맞출 심산이기 때문이다.
달궈진 팬에 고기를 올리고 설탕을 적당량 뿌려준다. 많이 뿌릴 필요는 없다. 단맛은 나중에 다시 맞출 거니 약간만. 익히는 고기에 설탕을 미리 뿌리면 고기에 단맛에 배이는 효과와 더불어 열이 가해진 설탕으로 인해 약간의 캐러멜 라이징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오늘 고기는 앞다리 살이다. 적당히 기름기가 있고 적당히 살코기가 있어 조화롭기에 볶음요리에 좋다.
국민학생이었던 시절이었다. 내가 살던 안양, 그리고 호계동이라는 동네에는 작은 시장이 있었다.
그 시장에는 제법 커다란 정육점이 하나 있었는데, 비슷한 규모의 정육점이 바로 옆에 들어섰다. 그것 뿐만 아니라 새로 들어선 정육점은 손님 유치를 위해 돼지고기를 한 근 100원에 파는 파격적인 행사를 진행했었다. 그러자 원래 있던 정육점도 이에 질세라 같은 행사를 진행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안양 호계동에서 뜻밖의 돼지고기 르네상스가 열린 순간이었다. 얼마나 충격적인 행태였던지 케이블은 고사하고 공중파 3사(kbs mbc ebs)밖에 없던 것 시대에 이 정육점들이 방송을 탔었다. 물론 방송에선 직거래를 통한 유통구조의 개선으로 마진을 줄이는 게 가능하다 블라블라였지만 실상은....
물론 그게 비싼 부위는 아니고 싸구려 뒷다리살(후지)였을 것이다. 지금도 엄청 싸지만 옛날엔 정말 저렴했으니...
근데 뭐 그게 중요한가?
그래서 우리 동네의 모든 사람들은 양쪽 정육점을 들러 고기를 사서 집으로 가는 게 하루 중 가장 큰 일과였다.
폭발하듯 몰려들어온 손님들 덕분에 인당 구매제한을 두었기 때문에 가족의 모든 인원이 정육점에 방문해야 했다.
장 보러 간 어머니들,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 학생들, 퇴근하고 집에 돌아가던 직장인들 전부 정육점에 들러 고기를 사 가는 게 매일매일 주어진 과업이었다.
덕분에 어느 집에 놀러 가서 얻어먹는 밥엔 풍성한 제육볶음이 있었고, 모든 집의 저녁상엔 제육볶음이 빠지지 않았다.
자본주의, 그리고 경쟁이란 좋은 것이다. 십몇 년이 훌쩍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난 아직도 그거보다 싼 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다.
고기가 반쯤 익으면 된장을 넣어준다. 고기에 간을 소금 대신 입히는 거다. 된장을 쓰면 장점이 있다. 된장의 주성분인 콩이 고기에서 나온 기름에 볶아지며 구수한 감칠맛을 내준다. 나는 어머니가 직접 만든 재래된장을 썼지만 시판 된장을 써도 충분하다.
된장이 기름이 볶아지면 고기를 뒤적여 코팅을 해주고 애호박을 넣는다. 애호박이 반쯤 익으면 양배추와 양념장을 넣는다. 채소를 따로따로 넣는 이유는 이 둘의 익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애호박은 적당히 익히지만 씹는 식감은 남겨야 맛있다.
양념과 양배추를 넣었다면 양념이 고르게 고기에 배도록 계속 뒤섞어 준다. 이 정도 되면 고기에서 나온 육즙+채소에서 나온 채수 덕분에 국물이 생기기 시작한다.
국물이 어느 정도 생기면 고춧가루를 넣어 준다. 칼칼하고 매콤한 맛을 위한 것도 있지만 고춧가루로 어느 정도의 국물을 되직하게 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기에 그렇다. 고춧가루를 넣고 뒤섞다가 채소와 야채가 거의 다 익었을 때 간을 본다.
이때에 부족한 짠맛과 단맛을 보충해준다. 고기 자체는 설탕과 된장을 넣어 미리 조리했기에 국물의 맛을 중심으로 간을 맞춘다. 이때 짠맛은 소금으로 맞추는 것이 편하다.
간이 맞춰지면 불을 끄고 손질해준 파를 넣은 후 뒤섞어 준다. 파는 남은 잔열로 조리해도 충분하게 익는다. 너무 익히면 오히려 질척해기만 한다. 적당히 씹는 맛을 남겨두는 것이 좋다.
이제 완성이다.
접시에 옮겨 담고 깨를 살짝 뿌리자.
나는 제육볶음을 좋아한다.
분명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먹은 음식이며, 나이 먹은 지금도 일주일에 몇 번 씩이나 먹는 음식이라 질릴 법도 한데도 여전히 제육볶음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다른 방식으로 조리하겠다만, 그래도 꾸준히 먹을게 분명한 제육볶음.
나이를 먹고 이제는 나도 어른이 되어 안양의 그 100원짜리 돼지고기보다 몇 배는 더 비싸고 좋은 고기를 살 수 있다만, 여전히 어렸을 적 우리 집, 친구네 집에서 먹던 그 100원짜리 싸구려 돼지고기 맛은 잊히지도 뛰어넘지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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